생활문화
6·25 전사자 유품 81점, 76년 만에 새 모습
땅속에 묻혀 있던 6·25전쟁 전사자들의 유품이 과학적 보존 처리를 통해 70여 년 만에 본래의 형체를 되찾았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고(故) 조도형 하사를 포함한 전사자 5명의 유품 81점에 대한 정밀 복원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에 인계했다. 이번 성과는 지난 2023년부터 추진해 온 발굴 유품 보존 처리 사업의 첫 번째 결실로, 장기간 흙과 부식물에 덮여 식별이 어려웠던 개인 보급품과 무기류가 현대 과학 기술을 통해 역사적 증거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복원된 유품 중에는 당시 전장의 참혹함과 긴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어 숙연함을 더한다. 특히 24세의 나이로 전사한 고(故) 조영호 일병의 M1 개런드 소총은 보존 처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총기 내부 탄창에는 8발의 탄환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안전장치조차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조 일병이 적을 마주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었으나 미처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전사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으로, 당시 현장의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보존 과학은 유품에 숨겨진 세부 정보까지 찾아내며 제작 국가와 보급 시기를 규명하는 데 기여했다. 심하게 부식되었던 철모 부속품에서는 세척과 강화 처리를 거친 끝에 '유나이티드(UNITED)'라는 선명한 각인과 코팅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단서들은 당시 국군에게 보급된 장비의 출처와 이력을 확인하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가 된다. 이 밖에도 계급장과 응급치료키트 등 개인 소지품들이 본 모습을 되찾으면서, 이름 없는 병사로 남을 뻔했던 전사자들의 존재가 구체적인 실체로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되었다.이번 프로젝트는 부처 간 장벽을 허문 협업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해 7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유품을 우선적으로 선별해 체계적인 보존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동안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유품들은 금속이나 섬유 등 재질에 따라 부식 속도가 빨라 영구 보존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국가유산청의 전문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면서 유품의 훼손을 막고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다.보존 처리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년까지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센터는 올해 6월부터 시작되는 2차 연도 사업을 통해 고(故) 전승남 이등중사 등 신원 확인 전사자 6명의 유품과 대형 총기류, 심지어 훼손이 심한 흑백사진까지 포함한 총 74점의 유물을 추가로 인수해 복원할 계획이다. 특히 사진과 같은 지류 유물은 금속보다 복원이 까다로운 만큼, 첨단 디지털 복원 기술까지 동원되어 전사자들의 생전 모습과 기록을 되살리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76년 전 멈췄던 영웅들의 시계는 보존 과학이라는 동력을 얻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복원된 유품들은 유가족에게 전달되거나 관련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어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는 교육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이번 복원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해 국민들이 유품 속에 담긴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직접 확인하고 추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낸 낡은 철모와 소총은 이제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영원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