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소식

미·러·우 빈손으로 끝난 평화협정.."별다른 성과 없어”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제네바 회담이 결국 차가운 냉전의 벽을 실감하며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발발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희생을 낳은 이 전쟁의 출구를 찾기 위해 미국이 직접 중재에 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한자리에 앉혔으나 양측의 입장 차이는 평행선을 달렸다. 미국 측은 회담 직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는 희망적인 평가를 내놓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협상을 고의로 지연시키려 한다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3국 회담이 이렇다 할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둘째 날인 이날에는 단 두 시간 만에 대화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록 양측 대표단이 추후 추가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며 대화의 불씨는 살려두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상 연설을 통해 일부 기초 작업이 진행된 것은 분명하나 현재로써는 입장 차이가 너무나 크다고 전하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번 협상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영토 문제와 에너지 자산의 통제권이었다. 특히 동부 도네츠크주의 영토 지위와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운영 계획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도네츠크 동부 지역의 약 20%를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 양도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주권 침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다만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과 미국 협상단이 도네츠크주에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실낱같은 희망을 남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영토 문제는 고통스럽고 어려운 과제이지만 결국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만 최종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힘겨루기도 치열했다. 우크라이나는 전력 주권을 지키기 위해 종전 후 자포리자 원전을 미국과 공동 운영하겠다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 관할권 아래 있는 시설을 미국에 넘길 수 없다며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는 종전 이후에도 재발할 수 있는 러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한 강력한 안전보장안을 미국에 요구 중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영토 문제가 확실히 정리되어야 안전보장을 담보할 수 있다며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전인 6월까지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양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터 밖에서의 외교전도 우크라이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같은 날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을 차단한 우크라이나에 보복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송유관 가동을 재개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 역시 헝가리와 보조를 맞추겠다고 선언하며 우크라이나의 에너지난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중 가장 추운 시기에 접어든 지금 이러한 인접국들의 원유 공급 중단 결정이 우크라이나 내부의 전력난과 난방 문제를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4년 차를 맞이한 우크라이나는 이제 전방에서의 총성뿐만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의 심리전 그리고 인접국들의 에너지 압박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고통스럽고 어려운 영토 양보라는 선택지가 과연 평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6월 시한이 다가올수록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할 시계추는 더욱 빠르게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평화는 여전히 멀고도 험난한 길 위에 놓여 있다.